권진규 아틀리에에서 만난 성북동의 고요한 예술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오후, 성북구 동선동의 작은 언덕길을 따라 권진규 아틀리에를 찾았습니다. 오래된 돌담을 따라 걷는 길은 낙엽이 바스락거렸고, 골목 끝에서 낮은 벽돌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조용한 주택가 사이에 자리한 공간이라 도시의 소음이 멀리 느껴졌습니다. 건물 외벽의 흔적만 봐도 세월의 결이 그대로 드러났고, 문을 여는 순간 공방 특유의 흙냄새와 나무 향이 섞여 들어왔습니다. 미술 전시장을 몇 번 다녀봤지만, 작가가 실제로 머물던 공간을 마주하는 감정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작품을 보는 일보다 그가 살았던 흔적을 따라가는 경험이 중심이 되는 곳이었습니다.

 

 

 

 

1. 언덕 위에서 만난 아틀리에의 자리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걸렸습니다. 출구를 나와 성북천을 건너면 골목이 좁아지는데, 안내 표지판이 작지만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길을 헤매지 않았습니다. 차를 이용한다면 입구 근처 주차는 제한적이라 인근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도심이지만 건물 간격이 넓어 하늘이 가깝게 느껴졌고,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나무들이 공간의 분위기를 미리 암시했습니다. 천천히 오르막을 따라 걷다 보면 붉은 벽돌에 낮은 처마를 가진 건물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마치 다른 시대의 시간대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길 자체가 이미 전시의 일부처럼 느껴졌습니다.

 

 

2. 오래된 공방이 전하는 공기의 무게

 

아틀리에 내부는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천장이 낮고,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점처럼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흙먼지가 쌓인 듯한 작업대, 나무 의자, 벽에 걸린 조각 틀들은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전시장보다는 작가의 숨결이 남은 일상의 공간이라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공간을 관리하는 해설사분이 당시 작업 과정과 생활상을 차분하게 설명해주셔서 몰입도가 높았습니다. 벽 한편에는 완성되지 못한 조각이 남아 있었는데, 그 미완의 형태가 오히려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정제되지 않은 손끝의 흔적이 시간의 두께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3. 작가의 손끝이 머물던 자리에서 느낀 울림

 

권진규의 작품들은 완결보다는 과정의 미학에 가까웠습니다. 흙과 석고가 뒤섞인 표면, 거칠게 남겨진 칼자국 하나하나에서 작가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조각의 표정은 단정하지 않았지만 묘하게 안정된 기운을 품고 있었습니다. 전시물보다도 그가 머물던 책상 위에 놓인 낡은 도구들이 더 오래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손잡이가 닳은 조각칼, 잉크 자국이 번진 노트 한 권이 작품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 물건들이 놓인 자리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 이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이었습니다. 세련된 전시장보다, 작가의 체온이 남은 장소라는 점에서 이곳의 의미가 더욱 깊게 다가왔습니다.

 

 

4. 작은 배려가 만든 조용한 감동

 

방문객을 위한 공간은 규모가 작지만 세심했습니다. 입구 옆에 마련된 작은 안내 데스크에서는 관람 순서와 관람 시간 제한을 친절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전시실 한쪽에는 짧은 영상 상영 코너가 있어 당시 작업 장면을 기록한 필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명이 강하지 않아 눈이 편했고, 내부 온도도 일정하게 유지되어 있었습니다. 소규모 전시관임에도 향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는데, 아마 나무 바닥에서 배어 나온 냄새일 듯했습니다. 방문객들이 머물며 기록을 남길 수 있는 노트가 구석에 놓여 있었고, 누군가의 필체로 적힌 문장이 조용히 마음에 남았습니다. 공간 자체가 친절한 안내문처럼 느껴졌습니다.

 

 

5. 아틀리에 주변의 산책 동선

 

관람을 마친 뒤에는 성북동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길 건너편에는 ‘성북예술창작터’가 있어 현대 작가들의 전시도 이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 내려오면 ‘길음동 커피클럽’이라는 작은 카페가 있었는데, 테라스 자리에서 바라보는 단풍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성북천 산책로까지 이어지는 길이 완만해서 산책하기에도 좋았습니다.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근처의 ‘간송미술관’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추천합니다. 짧은 거리 안에 서로 다른 시대의 미술이 공존하는 경험이었습니다. 이동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별도의 계획 없이도 하루 일정이 완성되었습니다.

 

 

6.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점

 

아틀리에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어 있어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시간을 선택해야 합니다. 관람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조용하게 관람할 수 있었지만, 주말 오후는 빠르게 마감되는 편이었습니다. 내부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구간이 있어 양말 상태를 신경 쓰는 것이 좋습니다. 촬영이 제한된 구역이 있으니 입장 전 안내문을 확인하면 도움이 됩니다. 관람 시간은 30분 내외로 넉넉하지 않지만, 공간의 밀도가 높아 충분히 여운이 남습니다. 봄이나 가을에는 주변 산책로의 분위기가 더해져 전체 동선이 한결 자연스럽습니다. 조용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평일 오전 시간을 추천드립니다.

 

 

마무리

 

권진규 아틀리에는 단순히 조각가의 작업실을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한 예술가의 시간과 숨결을 마주하는 장소였습니다. 번듯한 전시관이 아니지만, 그 담백한 정적 속에서 작품의 본질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간의 구조, 조명, 향기, 그리고 오래된 도구들까지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루며 그 시대의 온도를 전했습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여운이 길게 남았고, 다시 한 번 계절이 바뀔 때쯤 천천히 걸어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용히 머무르며 자신만의 속도로 감상할 수 있는 이곳은 예술을 조금 다르게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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